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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희는 1958년에 1남3녀중 3째로 태어났으며,

어릴적 아버지가 집을 나가 어머니가 혼자 아이들을 키웠다고 한다.

 

7080시대에 유지인 정윤희와 더불어 여배우 3대 트로이카라고 불리웠다.

 

원래 선머슴같은 성격으로 초등학교 선생님이 꿈이었으나

여고시절 언니손에 이끌려 1972년 예술대회에 출전하면서 금상을 받았다.

 

 

 

 

 

 

 

 

 

원래 장미정이라는 이름이었으나 장미희로 개명했다.

1975년 미스롯데 인기상에 뽑혔으며, 뒤이어 영화 [성춘향전]의 주연을 맡았다.

그녀에게 무명은 없었다.

1976년 고등학교시절 언니가 [성춘향전] 주연배우 선발 오디션에 동생의 서류를 접수 시켰는데

오디션 심사위원들의 몰표를 받으며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다음해인 1977년 [겨울여자]에 출연하여 당시 58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최고 흥행가도를 달렸다.

장미희가 [겨울여자2]에서도 출연을 하려고 했으나, 영화계에서 공채탤런트 출신이라는 이유로

반감을 가져 겨울여자2에 출연이 불발 되었는 이야기가 있다.

1983년 [겨울여자2]는 서울관객 4만7천명으로 흥행에 참패하였다. 

 

 

 

1977년 장미희

 

드라마 [청실홍실]도 대박이 나면서, 영화나 tv 모두 스타로 자리매김하였다.

 

 

 

1978년 [속 별들의 고향] [갯마을] 등 연이어 히트를 치며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렇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장미희가 1982년 돌연 출연 금지 연예인 목록에 오르며

1984년까지 활동이 제약 되었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려진것이 없다.

단지, 그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대통령이 좋아했고 부인인 이순자 여사의 입김이 있었을 것이란

풍문이 돌았었다.

 

 

1986년 [황진이]에 출연 하였다.

장미희 황진이

 

 

1991년 [사의찬미]에 출연하며, 대종상, 청룡영화상, 춘사대상영화제,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모두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이때 청룡영화제에서 한말인 '아름다운 밤이에요'가 유행어가 될정도였다.

 

 

 

 

 

 

 

2000년대에는 영화보다는 드라마 활동을 많이 하였다.

 

1989년 부터는 명지대 연극영화과 사회교육원 강사로 있었으며,

1996년 부터는 주임교수로 재직했다.

 

2005년 에는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했으며, 환경재단 136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2011년에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명예홍보대사를 맡기도 했다.

 

 

 

2017년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최근에도 드라마에 나오는등 방송활등을 하고 있다.

2023년 12월 제 59회 대종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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