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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이래 최고의 미녀'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으며, 일본 현지 영화인인 정윤희를 보고

'일본 일류 여배우 100명을 합쳐도 정윤희의 매력에는 못당한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7080년대의 장미희, 유지인, 정윤희가 여배우 3대 트로이카로 불렸으며,

그중에서 미모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녀가 은퇴한지 3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녀의 미모에 감탄하고 근황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윤희는 영화배우로 진로를 정한후 그녀의 첫작품인 1975년 영화 '욕망'으로 

데뷔했으나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였다. 

 

 

 

뒤이어 2번째 영화인 '청춘극장'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이역시 흥행은 실패 했으나, 그당시 최고 유명 여배우인 김지미, 윤정희가 거쳐간

배역을 맡았단 것으로도 그녀의 인지도는 높아졌다

 

 

 

그뒤로 TBC방송의 '쇼쇼쇼' MC, 해태제과 전속 모델 등을 하다가

1977년 장미희와 함께 출연한 '청실홍실'이 대박이 나며

스타로써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77번 아가씨 ' '죽음보다 깊은 잠' ' 도시의 사냥꾼' 등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탑스타 자리를 올랐다.초반에는 연기력이 부족하다고 지탄을 받기도 했으나,

 

1981년 정진우 감독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로 여우주연상을 받아 연기력 면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홍콩 스타 성룡은 정윤희가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혔으며, 한국에도 자주 방문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탄탄대로일것 같았던 그녀의 인생에 큰 사건이 생겼는데

유부남이었던 중앙건설 조규영 회장과의 불륜설이 터진 것이었다.

조규영 회장의 부인이 간통죄로 고소를 하면서 유치장에 수감되기도 했던 정윤희는

조규영 회장의 부인이 합의금 1억을 받는 조건으로 고소를 취하해 주었고, 

그 후로 1984년 조규영 회장과 정윤희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이후 연예계를 떠났던 정윤희는 

2011년 하나뿐인 친아들이 미국 유학중 약물중독으로 인한 심정지가 오며 사망하는 사건을 겪게 된다.

남편 조규영 회장의 중앙건설도 2010년에 워크아웃에 들어갔으며, 2014년 법정관리를 신청하였다.

20년을 살던  26억 한다는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경기도 고양시의 토지등이 경매에 오르기도 하였다

 

지금은 경기도 어디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 7월 '스타의광장' 행사에서 모습을 들어낸적이 있다.

 

54세때 정윤희

 

 

 

 

 

 

 

이후에도 잠깐씩 카메라에 잡힌 정윤희는 단정하고 손탈한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이웃들의 따르면 그녀가 예전 스타였던 것을 모를 정도로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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